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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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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를 가다 - 4 : 제14연대 주둔지 여수에 가서 주철희 박사님의 강의를 들었다. 원래 준비하신 강의 내용은 이었지만, 질문하면 답변해주는 방식으로 바꾸어 강의를 해주셨다.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여순'사건'이 아니라 여순'항쟁'이 맞는 말이라는 거였다. 또, 여순항쟁은 역사이며 여순항쟁으로 야기된 많은 학살이 있었고, 역사적 평가가 있어야 할 것이며. 그렇지만 피해 사실만을 강조하는 것은 여순항쟁의 역사를 소극적이며 수동적으로만 바라보는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피해 사실은 피해 사실대로 조사해야 하고, 여순항쟁의 태동에서부터 군인과 민중이 왜 저항할 수밖에 없었고, 어떻게 저항했는지 기록해야 한다. 그 행위가 역사적으로 평가받을 때 비로소 여순항쟁의 역사가 제대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본다는 박사님의 말이었다. 『여순항쟁답사기1』을 다시 읽으..
답사를 가다 - 2 : 만성리 마래터널을 지나 만성리로 왔다. 여순항쟁 답사가 대체로 마무리되는 곳이 만성리라고 한다. 만성리에는 여수 지역의 대표적인 학살지인, '여순사건 위령비'와 '형제묘'가 있다. 전남 동부는 특정한 곳만 학살지가 아니다. 곳곳에서 학살이 자행되었고, 그나마 가장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곳이 이곳 여수 만성리에 있는 '형제묘'이다. 만성리 학살지를 답사하기 위해선 반드시 마래터널을 통과해야 한다. 이 터널은 1930년 준공되어, 광주와 여수를 잇는 총 길이 160km 광려선의 철도굴이다. 마래터널을 뚫는 과정은 험난했는데, 여수신항 개발과 마래터널 건설 과정에는 일명 꾸리라고 불린 중국인 노무자가 강제 동원되었다. 만흥동 주민들의 증언에 의하면 "아침에는 벌떼처럼 사람들이 일하러 가는데 돌아올 때는 절반도 되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