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순항쟁이 담긴 소설을 읽고 - 2> 김승옥, 건
김승옥 작가의 소설집 무진기행에 수록된 건을 읽었다.
건을 읽으면서 미영과 윤희 누나는 소설 속에서 인물로서 역할을 하고 있는 게 아니라, 어떤 상징으로 역할을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주인공의 주변 인물들은 미영과 윤희 누나를 제외하면 모두 남성이다. 아버지와 형, 형의 친구들이 등장한다. 어머니의 부재가 미영과 윤희 누나라는 인물들과 연결(관련)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나’는 미영과 윤희 누나에게 정확히 무어라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을 느낀다. 어리광을 부리고 싶어 하고, 어딘가 자기를 불러서 데려가 주었으면 하는 마음과 뜨거운 이마에 손을 얹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나’의 머릿속에서 두 인물이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듯 보인다.
시체를 치우고 집을 돌아가며, 무전여행을 가지 못하는 일로 투덜거리는 형과 형의 친구들.
"재수 더럽다. 시체나 치워야 할 날인 줄은 꿈에도 몰랐지."하는 형.
사람이 죽고 그 시체를 보고. 또 시체를 옮기는 과정은 어떻게 보면 끔찍한 일이 일어난 것이다. 그럼에도 아무렇지 않은 듯 무감각하게 자신들이 원하는 일을 못 한다는 것에만 불만을 품고 있다. 이 장면이 그들에게는 이러한 일들이 특별한 것이 아닌 일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겉으로는 놀라워하는 기색도 없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혼란을 느끼는 인물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방위대 본부인 그 저택으로 가기 위해 담 위에서 골목으로 뛰어내리는 '나'는, 혼란스러운 시대를 지나며 그 속에서 성장하는 인물이다. 그 성장이 비록 올곧고 도덕적인 성장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건을 읽으며 여순항쟁이 사람들에게 끼친 영향과 그 여파에 대해서 생각했다.
여순항쟁에 대한 이승만 정권은 정치적·이념적 극단적인 대립으로 간주하고 ‘공산주의자=반민족주의자=매국노’라는 등식과 아울러 ‘공산주의자=빨갱이=악마’라는 등식을 적용했다. 그에 반하여 ‘반공주의자=민족주의자=애국자’ 등식을 적용하여 아와 적을 구분하는 이분법적 사고의 프레임을 완성했다. 이는 공산주의자(빨갱이)는 인륜을 저버린 비인간으로 죽임을 당해도 마땅한 존재, 언제라도 죽일 수 있는 존재로 일반화했다. (245쪽)
여순항쟁은 태동에서부터 민중이 왜 저항할 수밖에 없었고, 어떤 형태로 저항했는지를 기록하는 일은 역사적 평가 측면에서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248쪽)
여순항쟁의 출발은 제14연대 군인의 봉기였지만, 항쟁을 불태운 사람은 민중이었다. 미군정에서부터 이승만 정권까지 정치·사회 등의 억압과 민중의 궁핍한 생활이 지속되었다. 민생고의 어려움 속에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수천 가마니씩 착복하는 기득권 세력을 옹호하는 친일 관리와 친일 경찰 그리고 정책의 실패가 있었다. 빈부 격차를 해소하고 생활고 해결을 바라는 민중은 먹고살기의 한 방편으로 사회주의에 눈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 당시 시대상이었다. 소위 좌익이라고 일컫는 이들이 민중의 고충을 이해하고 아픔을 같이 나누려는 모습이 민중의 눈에 보였던 것이다.
지배 권력의 부당함에 민중은 맞설 수밖에 없었다. 민중의 염원과는 거리가 먼 체제와 정책에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특히 동포의 학살을 강요하는 출동명령을 거부한 제14연대 군인의 정의로운 봉기에 민중은 합세하고 지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아니, 민중의 면면에 흐르고 있던 저항의 기운에 제14연대 군인들이 도화선을 놓았다. (250~251쪽)
(주철희, 『여순항쟁답사기2』, 흐름, 2022년)
억울하게 죽은 이를 눈앞에서 목도하고도 아무렇지 않은 사람의 삶을 떠올려 본다. 빨갱이라고 불리며 비인간 취급당한 이들을 머릿속으로 그려본다.
2023년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나로서는 섣불리 그 어떤 말도 꺼낼 수 없다. 그러나 노력할 순 있다. 나와 같은 이들에게 이런 일이 있었음을 알리고, 잊지 않고 기억하자고.
너무 많은 사람이 제대로 된 정보를 알려고도 하지 않은 채 속단하며 살아간다는 생각을 한다. 무언가에 대한 생각할 때, 아마 이럴 것이라고 지레짐작하지 않으면 좋겠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정확히 알아보려고 노력하면 좋겠다. 진실을 마주하기를 주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